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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회고(Prequel Part 1): 공대생이 되다

최근에 퇴사 및 이직이 결정되면서, 지금까지 커리어를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와 비슷하신 분들도,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커리어 상승을 꿈꾸는 분들께 도움이 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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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회고(Prequel Part 2): 노예가 되다

최근에 퇴사 및 이직이 결정되면서, 지금까지 커리어를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와 비슷하신 분들도,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커리어 상승을 꿈꾸는 분들께 도움이 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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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회고(Prequel Part 3): 노예, 좋좋소에 가다

최근에 퇴사 및 이직이 결정되면서, 지금까지 커리어를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와 비슷하신 분들도,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커리어 상승을 꿈꾸는 분들께 도움이 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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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퇴사 및 이직이 결정되면서, 지금까지 커리어를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와 비슷하신 분들도,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커리어 상승을 꿈꾸는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최대한 솔직하게 작성할 예정입니다.

첫인상

첫 출근 때는 인사를 해야하기 때문에 정장을 입고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면접 볼 때 입었던 정장(친한 형에게 빌렸던)을 그대로 입고 출근하였습니다.

 

대기업은 구경도 못해본 상태에서(검색도 안 해봄) 강남 구석에 있는 회사를 갔는데 제 눈에는 건물도 이뻐보이고 회사도 이뻐보이고 너무 좋았습니다. 사람들도 대부분 친절했고, 출근 첫 날에는 팀장님이 휴가셔서 같은 팀의 대리 분들이 절 케어해주셨습니다. 연구소 내에 무슨 개발팀이었는데 팀 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요 😅

 

다음 주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팀장님을 만났는데, 면접 볼 때 사수라고 생각했던 분이었습니다. 엄청 동안이셨고 회사 내 평판이 최고일 정도로 실력도 인성도 외모(?)도 갖춘 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여러 팀장들을 만났는데, 아직까지도 최고라고 생각되는 분입니다.

 

회사는 자체 프레임워크를 가진 솔루션 회사였으나, 다른 회사에 우리 프레임워크를 팔아(?) 먹기 위해선 우리가 개발을 해줘야 했으므로 "솔루션 회사지만 SI 처럼 일했다"라고 평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자체 프레임워크를 가진 회사답게, 입사하고 첫 한달간은 프레임워크에 대한 과제를 내줍니다. 저와 동기들은 열심히 그 과제를 풀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자바로 뭐든 다 만들 수 있다"라고 생각했던 저는 처음 접하는 프레임워크에 매우 당황했습니다. 그 흔한 스프링조차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이게 왜 이렇게 동작이 되는 거지? 왜 이부분을 구현해야 하지?' 이런 의문을 계속 가지면서 코딩했던 기억이 납니다.

 

반면에 다른 프레임워크를 경험해본 동기는 정말 수월하게 과제를 풀어내더군요. 그 때만 해도 학력을 굉장히 많이 따졌기 때문에(?) 엄청 좋은 학교를 나온 것이 아님에도 대학원 경력도 있는 저는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수준이었는데, 처음 듣는 대학을 나온 동기들이 코딩을 더 잘 하는 것을 보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바만 잘하면 사실 프레임워크도 아무 것도 아니긴한데, 그 당시에 자신감이 있었던 것 치고는 제 자바 실력이 정말 미천했던 거 같습니다. 아니면 국비지원 학원을 다닐 때 스프링까지 배우고 나왔더라면 조금 더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형상관리 툴은 CVS(추후 SVN으로 변경)를 사용했었는데, 동기들이 커밋한 코드를 몰래몰래 참고하여 겨우 과제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쯤 회사가 바빠져서 과제에 대해서 리뷰하는 시간은 따로 없었고 저는 어떠한 피드백도 받지 못했지만 무사히 넘어갔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첫 프로젝트

입사 후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안드로이드 조교를 했었던 저의 경력 때문에(참고로 앱 개발팀은 따로 없었음) IoT의 전신인 M2M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습니다. 정확하게는 중기청(중소기업청)에서 개최하는 전시회에 참여하기 위해 스마트홈을 구축하는 프로젝트 였습니다.

 

저는 앱 개발과 일부 서버 개발을 담당했었는데, 라즈베리파이 모듈과 3D 프린터를 이용해 도어벨 처럼 만든 뒤 도어벨을 누르면 라즈베리파이 모듈에 연결된 카메라가 활성화되고 해당 영상을 영상 처리 서버에서 받아서 처리하고, 제가 만든 서버에서는 스트리밍 방식으로 해당 영상을 받아오고, 앱에서는 그 영상을 보여주는 것을 개발했습니다.

 

앱이야 안드로이드로 개발하면 되니까,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HTTP 개념도 잘 모르던 제가 미디어 서버를 연동하는 부분은 너무 어려워서 당시 같이 일하던 차장님이 껌딱지 처럼 붙어서 도와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굉장히 조용한 분이었는데 그 분도 회사 내에서 실력자로 손꼽히는 분이었습니다. 그 때 많이 배웠어야 하는데, 뭔가 이 일을 계속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이것만 넘기자는 생각이 더 컸던 거 같습니다.

 

뭔가 진짜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보니 뭐가 중요한지, 그걸 왜 해야하는지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던 시절인 거 같습니다. 요즘 저연차분들 보면 정말 스펙도 화려하고 알고있는 것도 많은 거 같은데 너무너무너무너무 부럽습니다. 저는 왜 항상 늦게 발동걸리는 스타일인지..ㅜㅜ

 

병영 캠프에 가다

일단 병영 캠프라고 어그로를 끌어서 죄송합니다. 군인 비하 목적은 당연히 전혀 없고, 현역으로 다녀온 분들 존경/존중하고 있습니다. 아래 내용을 읽어보시면 왜 병영 캠프라고 적었는지 공감하실 겁니다.

 

전문 연구 요원은 병역특례 기간(3년) 내에 훈련소 입소 날짜를 정할 수 있습니다. 아무 때나는 불가능하고 회사 일정도 고려해야하고 소집하는 날짜도 몇 개 지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 처음으로 회사에서 알려주자마자 최대한 빨리 입소하고싶다고 이야기하였고, 입사 후 약 6개월 만에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병역 특례는 전문 연구 요원, 산업 기술 요원, 공익 근무 요원(?) 이런 식으로 나눠져있고 입소 하더라도 현역들과 다른 중대로 소속되어 생활도 따로 하게 됩니다. (생활관을 따로 쓰는 것은 아님) 그리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현역은 8주였는데 저희는 4주만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 내용은 대부분 동일한데 조교들도 그렇고 소대장 정도까지는 나이가 비슷하기 때문에 굉장히 존중해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입소했을 당시에 소대장이 저와 동갑이더군요!) 물론 말 안 듣는 조도 있었지만 그런 조에도 현역들을 대하듯이 하기보단 조심한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훈련도 어디가 아프다든지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열외시켜 주었고, 정말 체험 수준으로 가볍게 진행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행군 때 완전 군장을 하지 않는다든지, 화생방 훈련 때 안에서 방독면 교체하지 않고 그냥 걸어서 지나간다든지.. 풀 전력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조금만 아파도 열외를 자원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8월 말에 입소해서 순식간에 4주가 지나 9월 말이 되었는데, 훈련소 동기들과 정도 많이 들고 나가면 꼭 연락하자고 번호 다 따놓고 했는데 나와서 몇 년 안에 연락이 다 끊긴 거 같네요😄

 

회사생활을 하다가 훈련소를 갔을 때 좋은 점은, 돈을 쓰진 못하고 한 달치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건데요, 계속 카드 값을 다음 달 월급으로 메꾸던 상황에서 안 쓰고 돈이 모여있는 것을 봤을 때 정말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 행복한 기억은 아주 짧았습니다. 훈련소 퇴소 후 집으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폰을 켰는데 카드 값이 밀렸다는 문자와 함께 서울 보증보험에서 문자가 와있었습니다. 이전에 아버지 사업 때문에 제 명의로 개통했던 폰 요금이 계속 밀려서 월급의 반에 가까운 금액을 바로 토해냈던 기억이..😭 안 그래도 가난에 지쳐있었는데 작고 소중한 월급까지 뺏기고나니 너무 서러웠고 그 때 이후로 돈에 집착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머리를 빡빡 밀고 입소했기 때문에 아무리 훈련 기간 내내 길어봤자 사회 나가면 누가봐도 군바리긴 한데요, 이 상태로 회사를 몇 달을 다녀야 머리가 복구되나 막막하기도 했었습니다. 평생 모자를 쓴 적이 없었는데 머리 기르는 기간 동안 모자를 쓰고 출퇴근했었습니다. (남자는 머리빨🥵)

메인 프로젝트를 맡다

훈련를 마치고 돌아와서 중기청 과제 및 전시를 잘 마무리하고 회사에서 가장 크게 진행하고있던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습니다. 바로 1세대 IoT 사업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통신사가 IoT를 주도하고 있었고, 그 중 가장 먼저 시작한 LGU+와 손을 잡고 IoT 플랫폼 서버를 구축 및 개발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이미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 중 IoT 서비스라는 서비스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곧 서비스인 서비스였죠. IoT 앱을 경험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어떤 스위치를 어떻게 조작하고, 타이머를 설정해 해당 시간에 동작되게하고, 센서의 상태 변화에 대해 액션을 정의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있었는데, 제가 담당한 서비스는 모든 스마트 기기의 설정에 관련된 개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사용자 별 기기에 대한 CRUD 작업이 많았고, 그 중 알고리즘을 필요로 하는 부분도 조금씩 섞여있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개발을 잘 모를 때라 for문 안에서 connection을 맺기도 하였고, 이런저런 삽질을 하면서 개발실력을 키우던 시점이었는데, 같은 팀에서 일하던 선배들에게 질문을 하면 보통 "어떤 프로젝트의 어떤 코드를 봐라" 하는 피드백이 전부였고, 그 코드를 봐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던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스프링 같이 강력하게 통제해주는 프레임워크가 아니었기 때문에 서비스 모듈(controller역할 반 + service 역할)의 execute()라는 메서드를 어댑터(gateway이면서 controller 역할 반)가 호출해주는 구조였는데, execute() 메서드 내부가 개발자별로 가지각색이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간단한 기능의 경우 메서드 내부에서 모두 처리해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if-else 구문의 depth가 5~6단계로 타고 들어가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어댑터가 1차적으로 분기처리를 해주긴 하지만 서비스 내부에서 추가적인 분기를 해줘야하는데 직접 URI를 파싱해서 내부적으로 나눈 서비스나 핸들러로 위임해줬어야하는데 이 부분부터 사실 코딩 실력이 많이 갈렸습니다.

 

저는 가장 친했던 사수의 코드를 많이 보고 따라했었는데, 그 때 if-else 지옥을 맛보았고, 뭐 하나만 수정해야하면 모든 클래스가 같이 수정되는 산탄총 수술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나름 객체지향에 대해 대학원까지 공부하고 온 저로서는 '아 역시 실무는 어쩔 수 없구나' 하면서 이론적으로 이상적인 부분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특히 DB를 다루는 코드가 엉망이었습니다. Database라는 클래스가 있고, 내부적으로 Connection을 가져오는 static 메서드가 있으며(외부에서 호출하지도 않는데 왜 static이었는지 지금도 이해 불가), 각 작업에 대해 하나의 메서드가 매핑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용자의 기기 리스트를 가져오는 메서드, 기기 하나의 상세를 조회하는 메서드, 이런식으로 하나하나 메서드를 생성하여 사용하였는데, 이 때 기존에 동작하는 메서드를 복붙하여 쿼리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구현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마이바티스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dao/dto 패턴도 많이 사용했었는데 그걸 적용한 다른 동료가 오히려 혼나는 모습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패턴을 적용하지 말라고 혼냈던 것은 아니고, 그 소스 코드가 오히려 클래스가 많이 생기고 복잡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개발하다보니, 제 코드도 점점 엉망이 되어갔고, Database 클래스의 경우 나중에 2000라인이 넘어갔습니다. 그러다 사고가 터진 적이 있는데, 평소처럼 복붙하고 개발을 하다가 try-catch-finally에서 finally 부분을 제외하고 복사를 하였습니다. 그 시절 개발해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finally에서 ResultSet, PreparedStatement, Connection 리소스를 차례로 닫아주는 구문이 들어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커넥션을 닫는 부분이 누락되었고, 개발서버에 배포된 적이 있는데 금방 커넥션을 다 소진하여 DB가 먹통이 되었는데 저는 저 때문인지도 몰랐다가 나중에 알고는 화들짝 놀랐고, 이런 실수를 어떻게 예방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오픈을 얼마 남기지 않고는 47시간동안 퇴근을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팀원들이 좋았고 분위기가 좋았어서 새벽에 야식도 먹고, 아침에 사우나가서 씻고 잠시 눈붙이는 생활을 하면서도 그게 당연하다고 느꼈고 재밌게 일했습니다. 참고로 그 때 연봉을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수준으로 일을 한 거긴 한데요(ㅋㅋ), 그 당시엔 그래도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오너십이 충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서비스가 잘됐으면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갈아넣어가며 일했습니다.

 

그렇게 일했더니 나중에는 10개가 넘는 모듈을 맡고 있더군요. 일 잘 하면(퀄러티가 높게 또는 성실하게) 일을 더 많이 주는 곳이 바로 회사 아니겠습니까? 좋좋소였기 때문에 그게 더 심했고 퇴사자가 발생해도, 다른 신규 개발건이 생겨도 거의 1~2순위로 불려다니는 개발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갈려나갔기 때문에 나중에 휴먼장애를 발생시키는 경우도 많이 생기고, 심지어 상용 환경에 그 상태로 배포되어 회사가 난리가 난 적도 있었습니다. (누구나 신입 때 이런 훈장 하나 쯤은 있잖아요?) 누구보다 열심히했음에도 연봉협상 기간에 저런 실수를 대표가 직접 언급하면서 얼마 이상 올려줄 수 없다는 얘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실수에 대한 책임을 일개 신입사원한테 지운 것도 억울하기도 하고, 연봉협상 때 아무 말도 못했던 제 자신도 굉장히 안타까운데 다 저러면서 성장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항상 팀장님과 팀원들은 저에게 잘 해줬고, 저는 병특이라 이직을 생각도 안 하던 시절이라 코묻은 돈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회사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린라이트

이 과정 중간 쯤 후배들이 입사하였고, 얼마 뒤에 그 후배가 저랑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을 알게되어 그 주제로 물꼬를 튼 뒤, 퇴근도 같이하게되고 점점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배는 근태도 정말 잘 지켰고, 당시 탕비실 청소를 막내들이 돌아가면서 했었는데(지금 생각하면 정말 꼰대스러운..) 항상 일찍와서 저와 같이 청소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저는 나름 막내 벗어났을 때도 먼저 오면 청소하는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었..) 사무실로 전화가 와도 막내라인이 전화를 땡겨받는(이것도 너무 꼰대스러운 ㅋㅋㅋㅋ) 암묵적인 룰이 있었는데, 다른 후배들은 못들은 척 하거나 전화오는 타이밍에 화장실을 가는 제스처를 취하는 반면 이 친구는 항상 자기가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연결해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얼굴에는 웃음이 많았고, 일도 성실하고 책임감있게 잘해서 주변 사람들이 같이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에 "여직원이랑 일 하기 싫다"를 당당하게 입밖에 내는 분들이 많던 시절이었는데, 그런 분들도 이 후배만큼은 같은 범주로 묶지 않고 좋아하곤 했습니다.

 

당시 3시간 일하면 1.5만원, 6시간 이상 일하면 3만원을 주말수당으로 지급하였는데, 연봉이 너무 낮았던 저는 그 돈을 받고싶어 주말에도 자주 출근했었습니다. 어느 주말인가 일도 하고 돈도 벌 겸 출근을 했는데, 그 후배가 조금 뒤에 출근하더니 저한테 간식을 챙겨주더군요. 그래서 같이 나가서 카페에서 빙수도 먹고 개인적인 얘기도 많이 하며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매일 밤샘작업을 하는 저에게 아침에 간식도 챙겨주고 사내 메신저로도 말을 자주 걸어오길래 저는 '그린라이트인가?' 하였고, 연애 생각이 별로 없던 시기에 마음이 살랑살랑 해지더니 결국 반전 없는 '그랬던 그녀가 제 옆에 누워있네요' 엔딩을 맞이했습니다.

 

사귀고 얼마 지나서 물어보니 그린라이트 전혀 아니고 저 혼자 착각한 거였고, 사귄 것도 얼떨결에 승낙한 건데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이야기해서 굉장히 충격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남자에 관심이 없고 순수한 친구였고, 오랜 연애 끝에 현재는 개발자 부부로 살고 있습니다.

 

동기부여

시간이 더 지나 마의 3년차 구간이 되었고, 후배들이 또 입사하였습니다. 저는 이미 회사의 메인프로젝트에서도 메인 모듈을 여러 개 담당하고 있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툭하면 저를 찾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날, 젊은 구성원끼리 회식을 하게 되었고, 후배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던 저는 이미 어깨가 주체할 수 없을만큼 올라가 있었고 회사 내에 스터디를 만들어보자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주제는 디자인 패턴으로 먼저 시작하자고하면서, 그 당시 다른 실력있는 1년 선배가 있었는데 그 친구(입사는 1년 빠르지만 동갑이라 친구로 지내던)를 꼬셔서 같이 하자고 의견이 모였습니다. 제가 그 친구를 찾아가 같이 이런 스터디를 할 예정인데 고문(?) 역할로 같이 진행해 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 친구의 대답이 지금의 저를 만든 거 같습니다. 그 친구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자바의 J도 모르는 애들이랑 같이 하고싶지 않은데?"

 

그 대답은 참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거 같았습니다. 본인이 어떤 의도로 이야기했는지 모르지만 그 애들 중엔 저도 껴있었고, 그 당시까지만 해도 제가 학력도 더 좋고 일도 훨씬 더 많이하고 사람들이랑 관계도 좋았는데 갑자기 저런 말을 들은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기분 나빴지만 앞에서는 표정관리를 하고 알았다고 하였고 그 다음부터는 그 친구를 봐도 아예 무시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분한 마음에 그 친구의 소스 코드를 확인하였습니다. 그 동안 남의 코드를 잘 안 봤었는데 다들 고만고만했고 객체지향적으로 작성하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보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신세계였습니다. 처음부터 참고한 소스 코드가 객체지향적이지 않았을 뿐이지, 이 친구는 정말 객체지향적으로 수준 높은 코드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전 그 때까지만 해도 스프링이나 다른 프레임워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시하곤 했습니다. 회사 자체 프레임워크를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을지 고민은 많이 했었지만 회사에서 쓰지도 않는 걸 공부해야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질 못했습니다.

 

그 때부터 대학원 때 공부한 내용을 회사에도 적용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습니다. 객체 생성과 관련된 디자인 패턴(추상 팩토리 패턴, 팩토리 패턴, 싱글턴 패턴 등)을 이용해 요청 객체를 분기해주는 클래스를 만들었고, 템플릿 메서드 패턴을 이용해 추상 요청 클래스를 만들어 흐름을 제어하고 무조건 해당 클래스를 상속받아 객체를 생성하도록 강제하였습니다. 그리고 에러가 자주 발생하던 요주의 클래스인 Database 클래스에도 템플릿 메서드 패턴과 스트레터지 패턴을 적용해 변하지 않는 부분을 추상화하고 변하는 부분만 인터페이스로 제공해 강제로 구현하게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마이바티스를 적용하지 않고 DAO/DTO를 이용하고 Jdbc 관련 기능을 JdbcContext로 만들고, 각 도메인의 CRUD 기능을 DAO 클래스를 계속 생성하는 방식으로 수정하였습니다.

 

심지어 이미 상용 환경에서 동작하고 있는 소스 코드들도 팀장님께 허락을 받아 1주일 정도 새벽 2시까지 열심히 리팩터링하였고, JUnit같은 테스트 코드를 활용할 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이래서 환경이 정말 중요합니다 ㅜㅜ) 일일이 포스트맨과 같은 클라이언트 툴을 이용해 테스트하였고, 다음 기능 배포 때 같이 적용해서 배포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JdbcContext가 하는 일이 스프링의 JdbcTemplate과 동일하더군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것들인데, 이런 것들이 모여서 프레임워크가 되는 구나 하는 것을 그 때 깨달았습니다.

 

이 때 이후로는 정말 날개를 달았습니다. 일이 없어도 새벽까지 공부하고 퇴근했고, 추석같은 연휴에도 당시 여자친구가 시골가거나 그러면 혼자 카페가서 매일 10시간씩 코딩을 했던 거 같네요. 후배들에게도 최대한 많이 알려주려고 노력했고, 한 친구한테는 6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같은 걸 계속 설명해 준 적도 있습니다.

 

대학교 졸작 이후로 개발이 재밌어지고 공부하는 게 즐거워지니 계단식으로 성장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성장함과 동시에 주위에 티는 안 냈지만 매우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백수가 되다

만 3년을 가득 채워서 전문연구요원 소집 해제가 되었을 때 쯤, 회사에서도 대리를 달았고 연봉협상을 하는데 어차피 이직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는지 제대로 반항(?)도 안 해보고 어이 없는 이유로 연봉을 후려쳤음에도 네~네~ 하고 나왔습니다.

 

주변에서는 "너 정도면 네xx, 카xx은 그냥 갈 거다" 하면서 저를 치켜세워줬고, 대학원 때부터 그 때까지 온전히 쉬지 못하고 달려온 저는 일단 퇴사 후 천천히 이직준비를 하겠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후배 중 한 명이 이직할 때 이력서를 많이 넣어서 여러 군데 붙어놔야 유리하다는 말을 해준 것 외에 다른 어떤 선배들도 이직에 대해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연한 게 그 회사가 첫 회사인 분들이 많았고, 오직 그 후배만  친구가 그렇게 이직을 많이해서 연봉을 높인 것을 알고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조언을 받았음에도 "난 좋은 데 가서 이직 안 할 거야" 라는 희대의 망언으로 대답을 한 뒤 패기있게 바로 사직서를 작성했습니다. 사장님한테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도 별 반응 없이 바로 사표가 수리되었습니다. 저 말고 다른 전문연구요원이었던 그 친구는 회사에 딜 해서 대리 맥스 연봉으로 계약 후 추가로 올해의 사원을 명목으로 현금을 따로 받기도 하였는데, 저는 그 때 몰라도 너무 모를 때였고, 열심히 한 저보다 그 친구에게 올해의 사원을 준 것 자체가 굉장한 분노포인트였습니다.

 

미련없이 회사를 나와서 백수가 되었는데, 바로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해야하는데 제가 적임자라고 프리랜서로 잠시 일해줄 수 있냐는 거였죠. 그 때 당시 자바 초급 프리랜서 단가가 월 350만원 정도에서 원천 징수 3.3프로를 제외한 정도였는데, 저는 재택으로 근무하겠다고 하였고, 재택 근무이기 때문에 250만원만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퇴사 전 제 실수령 월급이 250에 훨씬 못미쳤기에 전 좋다고 받아들였고, 낮에는 거의 이직을 위한 준비를하고 밤 늦게가 되어서야 회사 일을 조금씩 했음에도 워낙 고인물이 되어있었던 탓에 금방 회사일을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프리랜서일까지 하고나서 유명한 곳들만 골라서 이력서를 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네xx 본사 및 계열사를 취업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 일일이 하나씩 방문해가면서 자소서 및 이력서를 각각 작성하다보니 하루에 하나 쓰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중간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저는 그 충격에 또 오랜 시간을 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수많은 서류 탈락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쿠x도 써봐라, 배x도 써봐라 많이 이야기 해줬지만 그 당시 저는 네xx 아니면 아예 생각이 없었던 아주 거만한 백수였습니다. (참고로 지금이야 다른 회사들도 좋지만 그 당시에는 쿠x, 배x이 이렇게 좋아질 줄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쿠x이 부상하고 있던 시절이었죠.)

 

그렇게 네xx을 다 떨어지고나니 백수 3개월차가 되었습니다. 학자금대출을 5500 넘게 가지고 있었고, 그 외에 보장성, 저축성 보험을 다수 갖고 있었던 저는 퇴직금 8~900만원에 프리랜서로 번 돈이 아무 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월 200이 넘게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정말 조급해졌습니다.

 

네xx 아니면 안 가려고 했던 저는 급하게 고객사였던 회사부터해서 여기저기 이력서를 적어서 제출하기 시작했고, 그 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턱 주변이 여드름으로 가득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졌습니다. 경력으로 안 되면 중고신입으로 도전해보려고 했으나 신입은 공채 날짜가 정해져있어 그 때까지 기다리기도 애매했습니다.

 

그러다가 카xx에 서류통과가 되었고, 전화 면접, 코딩 테스트 모두 합격하여 1차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워드에 40 몇 페이지 정도 되는 면접 대비 질문들을 판교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열심히 읽으면서 판교 오피스에 도착했는데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제가 그동안 회사라고 생각하고 다녔던 곳과 너무너무 차이가 많이 나더군요.

 

네이버 엑스퍼트에서 진로상담을 할 때 선배든, 다른 기회를 통해서든 대기업에 가볼 수 있으면 꼭 가보라고 이야기 해준 적이 있습니다. 고3때 대학교 캠퍼스로 구경가듯이 이렇게 한 번 보고나면 그 회사에 꼭 가고싶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혹시 이 글을 사회 초년생 또는 취업 준비를 앞둔 대학생 분들이 보시게 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회사를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님 내부 인테리어 사진이라도 꼭 보세요! 의욕 뿜뿜 입니다.

 

1차 면접 때, 다양한 디자인 패턴을 자유로운 프레임워크에 적용해 강제성 높은 프레임워크로 탈바꿈 시킨 내용을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면접관 분들이 볼 땐 제법 귀여운(?) 내용이었을 거 같습니다. 스프링을 쓰지 않았었기 때문에 자바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았던 거 같습니다. 제 딴엔 제법 잘 대답했고 분위기도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1주일도 안 되어서 합격 통보를 받았고 임원 면접 일정이 정해졌습니다.

 

그 때 쯤 가지고 있던 돈이 모두 소진되어 친한 친구에게 500만원을 빌리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결혼과 이사를 생각해서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자기가 모은 돈을 흔쾌히 빌려줬습니다. 저는 잡플래닛 이런 곳에서 카xx의 4년차 연봉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이 정도면 월 얼마를 받을 거고 매달 얼마씩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위안 삼으며 괴로운 시기를 버티고 있었습니다.

 

임원 면접날이 되어 다시 판교 오피스로 갔고, 면접을 보는 내내 DB 관련된 질문이 많이 있었고, 임원 분들의 표정을 알 수가 없어 면접 결과를 예측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다행인 것은 '임원 면접이 심화 기술 면접이다'라는 소문을 듣고 준비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인데요, 첫 면접 때와 다르게 1주일이 지나도록 면접에 대한 피드백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가 추석이 껴있고 이러다보니 일정도 많이 딜레이 되었는데 피드백이 오지 않자 또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친구에게 빌린 돈도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조급해졌고 그 때가 거의 10월이 되어있었습니다. 제가 퇴사한 게 3월, 프리를 마친 게 4월 말이니,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가까운 시간동안 백수생활을 하게 된 것이죠.

 

여자친구를 만나도 항상 얻어먹어야했고, 그게 미안해서 집에서 저녁을 먹고 퇴근하는 여자친구를 만나 식당에서 눈치보면서 1인분만 시켜서 밥을 먹고 카페를 가서도 한 잔만 시키고 앉아있는 생활이 반복되다보니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정말 죽고싶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집안 사정도 좋지 않아서 손을 벌릴 수도 없었구요.

 

중간중간 메일을 보내 진행사항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면 항상 내부적으로 회의중이라는 답변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11월이 되었고,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칼을 빼들었습니다. 지금 저의 금전적인 사정을 말씀드리면서 이번 주 내에 답을 못 주시면 차라리 탈락처리를 해달라고 메일을 드렸고, 그날 저녁에 탈락 메일을 수신하였습니다.

 

그 메일에는 탈락 소식 외에 회사 내부 사정에 대해 자세히 적혀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임원 면접에서 탈락하였는데 기술 면접 때 저를 좋게 보신 분이 꼭 우리 팀 아니더라도 다른 팀에 TO가 있으면 데려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다른 팀에서도 TO가 있으면 추가 면접 이후에 합격처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서 저는 계속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다른 팀에 TO가 생기더라도 다른 사람이 면접봐서 그 자리를 차지해버리면 저에겐 기회가 없는 것이었죠. 그리고 직접 기술 면접을 보지 않은 다른 팀 입장에서는 얘기만 듣고 저를 뽑겠다고 쉽게 오케이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 거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김칫국을 실컷 먹고 다시 온전한 백수가 되었습니다. 그 때는 각오했었기 때문에 멘탈에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고, 무조건 연봉을 많이 주는 곳 위주로 찾아보다가 결국 돈이 너무 급해서 프리랜서를 관리해주는 업체에 가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소에 가다

가입하고 일주일도 안 되어서 헤드헌터로부터 몇 가지 연락을 받았고 제가 받을 수 있는 돈은 자바 중급 개발자 기준 500에서 10% 수수료 + 3.3% 원천징수를 제외한 금액이었습니다. 200 초반대 월급을 받다가 다 떼고도 430이 넘는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아무 데나 연결해달라고 하였고, 또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가산 디지털 단지 역에 있는 회사였고, 회사의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내 카페도 있고, 연구실도 이전 회사보다 훨씬 크고, 건물의 약 6칸 정도를 임대해서 사용하는 회사였기에 이전 회사에 비하면 컨디션이 훨씬 좋았습니다.

 

자바 개발자가 전무한 회사에서 급하게 자바 개발자를 뽑고 있었기 때문에 면접관으로 들어온 분 역시 아직 수습딱지를 떼지 못한 개발자였습니다. 저보다 경력은 훨씬 많아보였는데 이야기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은 안타깝게도 '자바를 잘 쓰는 분은 아니다' 였습니다.

 

약 한시간 가까이 면접을 본 뒤, 대표님과 2차 면접을 그 자리에서 바로 보게되었습니다. 제가 어떤 마음으로 개발을 하는지, 앞으로 어떤 개발자가 되고싶은지 많이 물어보셨고, 회사가 이미 마음에 들었던 저는 성심성의껏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대표님과 면접이 두 시간 반이 넘어가더군요. 중간중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카페로 내려오라고 하더니 그 사람에게 회사를 구경시켜주라고 하질 않나, 개인 적인 질문을 계속 하질 않나.. 시간을 계속 끌더니 마지막에 혹시 정규직으로 입사할 생각은 없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중개업체를 끼고 왔기 때문에 그렇게 계약을 해버리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내심 속으로는 여기 프리로 다니면서 다른 대기업을 준비해서 이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표님은 제가 제법 맘에 들어서 그런 제안을 해주신 거 같았으나 저에겐 아직 원대한 꿈이 있었습니다(거만함 + 교만함이 덜 빠진 상태).

 

그래서 원래 3달 계약이었는데 대표님의 강력한 주장으로 1+2달 계약을 한 뒤(한 달 보고 괜찮으면 정규직 전환 또는 제 의사에 따라 프리랜서 두 달 연장, 그렇지 않으면 퇴사) 두 번째 회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변에서 퇴사 후 회사를 알아보겠다고하면 정말 두 손을 걷어부치고 뜯어말립니다. 제가 정말 고통스러운 경험을 해봤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진심어린 조언해준 사람은 후배 한 명 밖에 없었고, 저는 그 후배보다 잘났다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지 않아 7개월이 넘는 백수생활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직을 생각하시는 분들은 꼭! 꼬오오옥! 다른 회사를 구하고 퇴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못 쉬는데 어떻게 하나요?" 이렇게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이 봤는데 일단 합격만 하면 입사일정은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계약 상태나 연봉 수준에 따라 연차를 다 사용하고 퇴사하는 게 더 금전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기도 하구요. 남은 연차를 다 사용해서 퇴사날짜를 정하고 그 날짜 이후로 1~2주 뒤에 입사하겠다고 하면 생각보다 많이 쉬고 이직할 수 있고, 이직할 회사에서도 그것을 나쁘게 보진 않습니다.

 

그리고 이직할 회사를 정확하게 딱 정했을 때 그 회사에 합격하지 않게되면 생각보다 멘붕이 심하게 옵니다. 여러 좋은 회사들을 평소에도 잘 찾아보시고 알아두시고, 이직시에는 취업 플랫폼을 이용해 이력서를 하나만 작성하신 뒤 마구마구 지원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해도 서류 합격하면 자기 회사 템플릿에 맞춰서 다시 작성해달라는 곳도 다수 있습니다만 그건 합격한 뒤에 옮겨적는 작업이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요즘은 자소서도 따로 작성하지 않아도 되는 곳들도 많기 때문에 훨씬 지원하기 쉬운 환경인 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플랫폼 템플릿에 이력을 적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github 페이지를 이용해 github 주소와 같이 공유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거 같습니다.

 

지금부터 잘 준비해놓으시면 나중에 이직할 때는 주소 한 줄 딱 보내고 연락을 기다리게 될 수 있습니다! (현재 저는 그렇게 하고있음에도 수많은 연락을 받고있고 그 중 한 곳에 최종합격해 이직해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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