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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퇴사 및 이직이 결정되면서, 지금까지 커리어를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와 비슷하신 분들도,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커리어 상승을 꿈꾸는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최대한 솔직하게 작성할 예정입니다.
본 편은 뒤늦게 개발에 맛들려서 아무 사전 지식 없이 대학원에 진학했던 패기 넘치던 10년 전 제가 전문연구요원으로 좋좋소에 가기까지의 이야기 입니다.
⚠️Warning: 매우 길고 지루할 수 있습니다.

세미나 지옥

10년이 조금 넘게 지났는데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다소 과장과 각색이 들어갈 수 있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저에게는 별로 기억하고싶지 않은 시간이었던 거 같기도.. 

 

기말고사를 마치고 친구들은 이미 다 취업하여 썰렁한 학회방을 떠나 드디어 연구실에 들어갔습니다. 저의 생각과는 다르게 적막함만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평소에 장난을 좋아하는 저는 그래도 적응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연구실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자리를 배정받고 선배에게 받은 첫 임무는 바로 세미나였습니다. 전공 지식이 매우 부족하고 객체지향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저는 연구실 전통적으로 진행해왔던 디자인 패턴 세미나가 아닌 UML (Unified Modeling Language) 세미나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영어에 자신이 있었던 저는(근자감 무엇 ㄷㄷ) 선배들(이하 형들)이 보내준 링크에 있는 원문을 1주일의 시간 동안 한 줄 한 줄 번역해가면서 발표자료를 만들고 스크립트를 작성했습니다. 생소한 용어들이 많아서 잘 외워지지 않았지만 꾸역꾸역 작성하고 외우다보니 금세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 사이에 형들과 친분도 쌓고 이전에 다른 선배들이 얼마나 못(?) 했었는지 무용담도 들으면서 저는 완벽하게 잘 해내고싶다는 마음에 의욕만 넘치다보니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못한 채 발표자료(PPT) 슬라이드 하나하나를 정성껏(매우 지저분하게) 만들었고, 원문의 방대한 양을 담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세미나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똥줄이 탔던 저는 형들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했다가 갑자기 싸늘해진 눈빛을 마주할 수 있었고, 한 데 까지만 일단 진행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데드라인을 제대로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은 저의 모습이 형들 입장에선 매우 건방져보이고 황당했을 거 같습니다. 저는 세미나가 연구실 구성원간의 중요한 약속이라는 개념조차 탑재하지 못한 무개념 대학원생이었습니다.

 

드디어 세미나 당일, 야심차게 준비한 PPT 파일을 열고 운을 떼자마자 폭풍 지적을 받았습니다. 첫 페이지에 제목 위치, 발표자 이름 위치, 연구실 이름을 쓰는 방법부터해서 왜 빨간색으로 표시하였는지, 단어 위주 작성이 아니라 왜 문장 위주인지 등 정신이 아늑해질 정도의 지적을 받았고, 열심히 외운 스크립트는 머릿속에서 하얗게 증발해버려서 어버버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군기를 담당하던 한 형이 지적사항에 대해 민망한 웃음을 지으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저를 보며 갑자기 "이빨 보이지마" 하면서 갑분싸를 만들었습니다. 그 때가 되어서야 저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은 학회가 아니고 정말 학교와 실무의 중간 즈음에 있는, 군대와 사회의 중간 즈음에 있는 곳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그 이후로도 제대로 발표를 진행하지 못하고 첫 세미나가 허무하게 끝나게 되었습니다. 약 두 시간에 걸쳐 PPT 슬라이드 기준 3장 정도를 발표했던 거 같네요.

 

세미나가 끝난 후 같이 바람을 쐬면서 형들이 위로를 해주었는데 제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특히 지금 생각하면 더 열받는 게 좋게 좋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을 무게 잡으면서 기를 죽이고(심한 말과 무시는 기본, 쌍욕도 포함), 열심히 한 부분에 대한 칭찬은 전혀 없었던 게 저의 대학원 생활의 시작부터 꼬이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러 들어간 곳인데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군기가 바탕이 되어야 할 이유를 지금도 전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회사는 서로 님님 하면서 나이도 잊고 직급도 잊게 만드는 수평적인 조직인데 말이죠. 다른 연구실은 분위기도 좋고 이상적인 곳도 많이 있었지만 제가 있던 연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근과 채찍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인격적으로 개무시를 해놓고 술 한잔 사주면서 "그래도 힘내!" 하는 건 저에게 전혀 와닿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음 세미나도, 그 다음 세미나도 저는 형들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으나 나름 배운 점은 있었습니다. 발표자료를 만들 때 주의해야 할 것들, 글꼴, 색깔, 그림과 글의 위치 뿐만 아니라 키워드 위주로 작성해야 한다는 점,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외웠다 한 번 멘붕이 오는 순간 다 까먹어 버린다는 점 등을 배웠고 UML에 대해서도 깊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때 열심히 만들었던 PPT 덕분에 나중에 교수님께 인정받게 되었고, 논문이나 제안서 등에 들어갈 다이어그램 등은 무.적.권. 형들이 아닌 저에게 시키셨습니다.

 

다음 세미나의 주제는 SOLID Principle과 디자인패턴이었는데, SOLID까지 진행한 이후로는 제가 못한다는 이유로 세미나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도 핑계라고 생각하는 게 지금 생각해봐도 그냥 형들이 귀찮아서 하기 싫었던 거 같습니다. 제가 못났 던 것은 100% 맞지만 저처럼 취급받은 동기들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SOLID를 이 때 심도있게 공부한 것은 정말 많이 남아있습니다. 아직 공부해보지 않은 분들은 꼭 공부해보시고, 지금 당장 이해가 어렵더라도 앞으로 개발을 더 많이 경험해보면서 생각날 때마다 한번씩 읽어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겁먹거나 걱정하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논문 지옥

보통 학기 시작 전까지 세미나를 통해 연구실에 적응하고, 연구실에서 다루는 연구들의 기초를 학습하게 되는데, 저는 쓸 데 없이(솔직히 유용하지만 괜히 심술나서😡) UML이나 실컷 보면서 시간을 낭비하다가 학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코스워크와 프로젝트만 진행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주기적으로 논문도 써야하더군요.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스키장, 제주도 등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는데, 학회 참가 비용을 BK (Brain Korea) 사업에서 지원받기 때문에 논문을 안 쓰고 학회만 참가하는 형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놀러갈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사실 심술충이라 글은 이렇게 썼지만 졸업요건에도 컨퍼런스급 논문 두 편을 기재해야했기에 당연히 석사 1~3기 사이에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대학원을 입학하기 직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된 저는 앱에 관심이 많았고, 위치 기반으로 휴대폰의 알림관련 프리셋을 변경해주는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도서관, 강의실 등 벨소리가 울리면 안 되는 곳에 가까이가게되면 자동으로 무음으로 바꿔주는 기능을 구현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앱까지 만들어가면서 열심히 작성하였고 테스트를 위해 도서관 주변을 계속 서성이기도 했습니다. 논문을 모두 작성한 뒤 박사과정 형과 교수님께 차례대로 컨펌을 받고 제출하였고 결국 정보과학회 포스터세션에 등재되어 스키장이 유명한 리조트로 연구실 전체가 놀러가게 되었습니다.

 

포스터 세션이라 리조트 로비 같은 곳에 마련된 장소에 논문을 축약한 PPT를 붙여놓으면 컨퍼런스에 참여한 사람들이 보고 질문하는 형식이었는데, 저는 처음이라 너무 떨려서 제 논문을 보고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하고 있었고 생각보다 자료를 잘 만들어서 그런지(아니면 관심이 없었을지도..) 다행히 질문하는 분은 없었습니다.

 

2기 때도 안드로이드를 주제로 논문을 썼는데 내용은 참 별 거 없었는데 그 때는 오랄 세션에 당첨되었습니다. 충남대에서 컨퍼런스가 열렸고 교수님들과 다른 학교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했었는데 그 때도 다행히 질문이 많지 않아서 잘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제주도로 컨퍼런스 간 적도 있는데 왜,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제주도에 갔을 때는 연구비가 넉넉하지 않아 몇 명만 갔었고, 지독하게 가난했던 저는 가서 먹을 거 안 먹고 놀 거 안 놀면서 돈을 아껴쓰고 나중에 차액을 받아서 생활비에 보탰던 기억이 납니다.

 

논문을 작성하면서 배웠던 점은, 무엇 보다도 초록(abstract)과 서문(introduction)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지만 논문도 읽어야할지 말아야할지를 결정하는 부분이 바로 초록과 서문입니다. 왜 이 논문을 썼는지에 대한 이유가 가장 잘 나와있는 부분이고,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면 그 이후에 제안하는 것들이 다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논문을 작성해 본 이후 공부를 할 때나 다른 글을 읽을 때도 가장 주의깊게 보는 부분이 바로 서론 부분입니다. 왜 이 공부를 해야하는지, 왜 이 기술이 등장했는지, 왜 이 책을 읽어야하는지가 가장 잘 적혀있고, 서론을 제대로 읽고 나머지를 읽게되면 훨씬 더 이해가 잘 가고 머릿속에 오래 남아있는 거 같다고 느꼈습니다.

 

아무튼 대학원 때 논문을 작성했던 것은 졸업 이후 일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논문을 작성한 것을 바탕으로 특허 출원도 할 수 있었고, 스펙이 중요했던 시절 이력서에 한 두 줄 추가할 수 있었던 점도 좋았고, 그 때 공부했던 글을 읽고 쓰는 방법들을 아직까지도 정말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교 지옥

대학원에는 두 종류의 조교가 있는데 바로 교육 조교(이하 TA, Teaching Assistant)와 연구 조교(이하 RA, Research Assistant) 입니다. 조교를 하면 좋은 점은 당연하게도 등록금의 50%를 장학금으로 받는 다는 점입니다. 단점은 장학금 빼고 모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나마 RA는 대부분이 하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교수님의 비서에 가까우므로 케바케) 단점도 딱히 없다고 할 수 있지만 TA의 경우 정말 많은 시간을 빼앗깁니다.

 

보통 담당 교수님의 수업을 보조하는 경우도 있지만 담당 교수님 수업이 실습과 관련이 없을 경우 다른 교수님 수업의 실습 과목을 맡아서 진행하게 됩니다. 저는 TA에 지원하여 2학년 1학기 때 듣는 수업인 프로그래밍 실습 조교를 맡았고 두 반을 담당하여 수업을 진행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르칠 실력도 안 되는 제가 조교로서 자격이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 학생들은 더 모르기 때문에 학회나 동아리에서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을 제외하면 자바 환경 변수 설정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야 했습니다.

 

조교 지옥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다른 할 일 들이 너무 많은데(코스워크, 프로젝트, 논문 등) 강의 자료도 직접 준비해야하고, 주 2회 수업을 진행해야하고, 마지막 프로젝트를 채점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강의자료와 채점까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수업이 있는 날은 사실상 다른 일은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앞에서 라이브코딩을 하면서 알려주고 돌아다니면서 잘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개별적으로도 알려주고.. 그러고나면 기가 다 빨려서 연구실로 돌아왔을 때 제 일을 진행하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연구실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뿌듯하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제가 군대를 안 다녀온 젊은 조교라 그런지 학생들이 저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서 나름 관계도 괜찮았고, 단축키 사용에 능숙했던 제가 라이브 코딩으로 슥슥 코드를 쳐 내려가면 환호성을 보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디아블로3가 그 쯤 출시했었는데 수업을 빨리 끝내주고 "이제 디아하러 가세요!"하면 남학생들이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그 당시 제 나이가 26살이었는데 3학년으로 편입한 학생들 대부분이 저의 수업을 수강하였고, 제 또래이거나 나이가 더 많은 분들도 있었는데 나름 조교라고 엄청 대우해줬던 게 생각납니다.

 

TMI + 오지랍충인 저는 지금 다시 조교를 하라고해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삭막한 대학원 생활 중 몇 안 되는 즐거움이었고 그 때 강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나중에 네이버 엑스퍼트 활동을 할 때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네이버 엑스퍼트는 그만둔 상태이므로 검색하셔도 소용 없습니다!
나름 자바 카테고리 1위 였는데 아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기회가 되면 네이버 엑스퍼트 썰을 풀어봐야겠어요.

코스워크/프로젝트 지옥

공대 대학원 생활을 할 때 보통 코스워크를 1~3기 사이에 몰아두고 마지막학기는 졸업논문 작성과 취업준비 위주로 하게 됩니다. 24학점을 이수하면 석사를 수료할 수 있는데(이건 학교마다 다를 거에요) 3학기동안 3학점짜리 전공과목 8과목을 이수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보통 3/3/2 과목 또는 4/4 과목으로 나눠서 수업 계획을 짭니다.

 

코스워크 자체는 기본적으로 교수님들이 점수를 잘 주려고 하시기 때문에 기본만 하면 큰 문제될 게 없습니다. 하지만 수업이 대부분 세미나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발표 준비를 하는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시험 공부 또한 마찬가지구요. 근데 문제는 이런 수업 준비를 조교 활동을 하면서, 논문 준비를 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같이 해야 합니다.

 

프로젝트의 경우 연구실(대학) 여러 개와 중소(또는 중견) 기업이 같이 진행하게 되는데, 주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진행사항을 공유하기도 하고, 개발해서 보여줘야하는 경우 시연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것도 설렁설렁 준비할 수 없습니다. 관련 논문도 봐야하고, 적용할 기술도 봐야하고, 발표 자료를 만들어서 교수님 앞에서 미리 리허설도 해야하고..

 

지금 생각하면 회사일 + 공부를 한다고 보면 될 거 같은데 오전 9시반에 출근해서 오후 11시에 퇴근(새벽 퇴근 부지기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 같습니다. 물론 시간이 많다고 무조건 해낼 수 있는 건 아니었죠. 프로젝트를 위해 코스워크를 포기한 적도 있고, 다른 일정에도 아주아주 많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교수님들은 이런 사정을 다 아시기 때문에 봐주실 거 같기도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해해주시지 않고 수업에서 쫓아내거나 바로 최하점을 주신 교수님도 있었습니다. 물론 일정에 맞춰 세미나를 준비하지 못한 학생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능력은 안 되는데 맡은 일이 많다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대학원에서는 C, D를 받으면 실제론 F, B를 받으면 D를 받은 거나 다름 없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교수님들께서 대부분 점수를 잘 주려고하시지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 효율이 극도로 떨어지는 타입인 저는 두 과목이나 B, B+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업 때 세미나 발표를 못하거나 안 했을 경우 바로 연구실 전체에 소문이 나는데, 그 소문을 듣은 형들한테도 혼나면서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다시 프로젝트 이야기로 돌아가서, 제가 석사 과정을 진행하는 동안 두 개의 프로젝트를 메인으로 맡아서 진행했었는데, 하나는 온톨로지를 이용해 IDC를 관리하는 프로젝트였고, 하나는 웰니스(Wellness) 프로젝트였습니다. 전자는 선배들이 진행하던 것을 받아서 쭉 진행했고, 후자의 경우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3기 때 제안서를 쓰고 준비해서 4기 때 본격적으로 하려다가 프로젝트 이해관계자 중 한 쪽이 비리를 저질러서 중간에 고꾸라져 버렸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IoT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사업이었는데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온톨로지와 IoT 모두 향후 10년을 지배할 기술이라고 오두 방정을 떨면서 공부하고 개발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흠.. 둘 다 망한 기술 같네요. 온톨로지보다는 머신러닝을 통한 AI 기술이 좀 더 대세이면서 유용한 거 같고, IoT는 통신사에서 시작해서 결국 제조사로 모두 넘어가버린 거 같지만 그래도 온톨로지보다는 유용한 기술인 거 같습니다.

 

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문서 작성하는 실력은 월등하게 성장할 수 있었고, 온톨로지 프로젝트의 경우 프로토타입 개발이 필요했기 때문에 개발 실력 또한 조금은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 생활 하면서 조교할 때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개발을 했던 순간이라 오히려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졸업 논문 지옥

장학금 TO로 연구실에 들어간 경우 영어로 졸업논문을 쓰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관례라고 적었지만 연구실별로 필수인 곳도 있었는데 제가 속한 곳이니 이렇게 잘 알고 있겠죠?

 

그래서 2~3기 내내 진행했던 온톨로지를 이용한 프로젝트에서 공부하고 개발한 내용을 바탕으로 졸업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다행히 코스워크를 모두 마무리 한 상태였고, 프로젝트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된 상황이라 졸업논문에만 몰두할 수 있었지만 영어로 작성해야했기에 정말 힘들었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습니다. 특히 게다가, 또한 이런 표현을 한글로는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이걸 다 영어로 쓰다보면 in addition to, furthermore, and also 등등 표현을 다 다르게 해야하는 게 굉장히 고역이었고, 논문에 어울리는 표현을 찾기위해 다른 영어 논문을 열심히 읽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 기간에 저에게 또 불행이 닥쳐왔는데 대학원 생활하면서 사귀기 시작했던 여자친구가 먼저 대기업에 취업을 하였고 그 이후로 뭔가 뜸해지면서 졸업논문을 작성하는 기간에 잠수이별을 당했습니다. 이 때는 그래도 몇 번 경험해봐서 면역이 좀 되어(질질 짜지 않았음, 진짜임)있었지만 집중해서 논문을 써야하는 상황에서 어쩄든 마음을 다잡기 힘든 순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실에선 이런 저의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았습니다.

 

후배가 드디어 들어왔는데 몸이 굉장히 안 좋아서 연구실 생활을 집중해서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배가 제 프로젝트를 또 맡아서 해야하기 때문에 관련 주제로 세미나를 했었는데 그걸 제가 케어해주지 않았다고(열심히 해줬는데..) 역시 쌍욕을 먹었고, 졸업논문을 쓰고있고 상태가 안 좋은 저에게 "그깟 여자일로 남자ㅅㄲ가 그러냐"는 식의 인격모독도 서슴치 않았고 쌍욕도 정말 많이 먹었습니다.

 

저는 그 때 쯤은 빨리 졸업논문만 마무리하고 연구실을 나가자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4기 시작할 때 쯤 졸업논문 컨펌받고 연구실 돌아다니면서 교수님 싸인받고, 책자로 만들고 이런 작업들을 한 뒤 보통 취업준비를 하기 때문에 연구실에서 off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대기업 공채를 준비하기 위해 늦어도 10월 말쯤에는 연구실 생활을 마무리했던 거 같습니다.

 

어떻게 겨우겨우 영어로 졸업논문을 작성하여 컨펌을 다 받았고, 졸업논문 인쇄본까지 다 받아서 주변사람들에게 돌리고, 형들에게 먼저 이제 취업준비를 위해 연구실을 나가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형들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저널 쓰고 나가야지~" 라고 하더군요.

 

국내 논문에는 급이 있는데 컨퍼런스, 저널 등이 있고 저널은 학회지에 실리는 보다 높은 급의 논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확한 건 저도 잘 몰라서 직접 검색하시는 게..) 제가 다녔던 학교 기준으로 석사는 컨퍼런스 2개만 쓰면 졸업요건을 갖출 수 있고, 박사 기준으로는 저널 뿐만 아니라 해외 논문도 작성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논문 별로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해외가 필수라기보단 다른 여러 개 국내 논문을 쓰는 것보다 덜 힘들어서 그렇게 하는 거 같기도 하구요.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죄송합니다.)

 

전 이미 졸업요건을 갖췄는데 무슨 🐕소리인지.. 어찌나 황당하고 분하던지.. 그 때 저희 집 사정이 정말정말 최악으로 안 좋았고, 저는 밥먹을 돈이 없어서 다이제 초코 과자 하나 사서 1주일간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연구실 책상 아래 숨겨놓고 하루에 3개정도씩만 먹었고,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는 집에서 먹고온다고 하고 자취방에가서 배고픔을 달래기위해 잠만 자고 왔었습니다. 빨리 돈도 벌고 싶고 군대 문제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좋은 회사에 이력서를 넣어볼 수 있는 기간에 저널을 쓰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이력서 쓰면서 저널 쓰면 됩니다. 일 하면서 이직준비 하듯이요. 근데 그 때의 저는 한번에 여러 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특히 취업준비가 처음이라 거기에 시간을 많이 뺏기면 저널을 못쓰게되고, 반대로도 마찬가지고 그런 상황이라 하나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취업

하필 제가 전문연구요원을 준비하던 기간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대기업에서 병특 TO를 없앤다는 것이었는데요, 그 전 해부터 종종 들려오던 소리였지만 애써 무시했었는데, 제가 준비해야하는 그 기간에! 대기업 병특이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기존 TO만 유지)

 

다행인 건 그 때 당시 대기업이 아니었던 네이버, 카카오 등은 병특을 여전히 뽑고있었고, 대기업엔 못가더라도 좋은 회사로 알려져있는(그 때만 해도 ㅋㅋ) 회사에 지원을 해보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취업준비 하는 것을 형들이 엄청 견제했고, 저널 논문을 영어로 쓴 졸업논문을 다시 한글로 번역해서 작성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음에도, 항상 보여주면 몇 줄 읽어보지도 않고 다시 써오라고 했습니다.

 

그 때도 제가 의지만 있었다면 뭔가 해낼 수 있었겠지만, 심신이 너무 지쳐있고, 집안 사정은 안 좋고, 돈도 없고 밥도 못먹는 상태에서 진짜 오로지 '저널 빨리 쓰고 나가자'라는 생각이 뇌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무려 2월까지도 논문 컨펌을 못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긴데, 제가 박사과정 가고싶다고 딱 한 번 얘기한 게 있었는데, 박사로 끌어들이려고 컨펌을 바로 안 해준 것이었습니다. (물론 논문이 수준 미달인 것도 사실이지만, 2저자로 박사 형들 이름 넣어놓고 나가는 게 국룰, 이후 논문을 다듬어서 내기만하면 포인트 획득) 연구실에 학생 수급도 잘 안 되고 하다보니, 특급 노예 등업 찬스를 저에게 넘기려고 했던 것이죠.

 

제가 주변에서 대학원 간다고하면 무조건 말리는 이유중 하나인데, 진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저렇게 했던 형들이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냥 계속 내려오던 관례이고, 나름 잘 해주려고 했던 부분들도 있기 때문에 지금와서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대학원 진학하실 거면 꼭! 꼭!!! 정말 많이 알아보고 가셔야 합니다. 연구실의 연구 주제, 프로젝트, 어떤 논문들을 썼는지, 향후 취업은 잘 되는지, 어떤 선배들이 있는지 등등 최대한 많이 알아보고 가셔야 저같은 일을 겪지 않습니다..

 

2월 초쯤부터 정말 발등에 불떨어진 저는 약간 화를 내듯이 이야기했습니다. "전 군대 끌려가기 직전이고, 박사 생각 아예 없습니다. 형들이 꼬시니까 장단 맞춰준 거지, 이 생활을 몇년 더 할 형편도 안 되고 하고싶지도 않습니다."라고 하자 그럼 "취업준비해~" 이러더라구요. 참 허무했습니다.

 

다른 연구실의 젊은 교수님이 교수 추천으로 알려주신 곳이 있었는데 이력서 나름 열심히 써서 제출하였고,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컴퓨터 학원에서 IT 기업이 된 곳이었는데, 첫 면접부터 거의 임원급이 나와서 압박면접을 하였고, 이력서 한 줄 한 줄 태클을 거는 모습에서 정말 가고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차 면접 때 저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 대학원 때 진행했던 프로젝트로 세미나를 해달라고 하더군요. 이미 생각을 접은 저는 교수님께 죄송하다고 메일 보내고 면접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사람인을 이용했었는데 거기서 이력서를 올려놨는데 어떤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처음으로 정장을 입고(이때만 해도 면접 때 정장, 첫 출근 때 정장을 입으라고 했어요) 면접을 보러가서 한번에 기술+인성 면접을 보았고,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저랑 같이 일하게 될 사수라고 소개한 분과, 연구 소장님이 들어왔었고, 전 신나게 제가 대학원 때 했던 일들을 이야기하였고 호응도 잘 해주셨습니다. 사수가 될 분은 저에게 기술적인 질문들을 많이 하셨고(병특이라고 크게 특별한 것은 없었고 보통 신입한테 묻는 것들) 저는 일부는 대답하고 일부는 못했지만 분위기가 좋았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된 거지만 사수(대리쯤일 줄 알았던)라고 말씀하셨던 분이 팀장님이셨고 저랑 띠동갑이었습니다.

 

면접을 마치고 인사하고 나오는데 경영지원팀에서 마중나오면서 늦어도 이번 주 안에 연락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약속이 있어 친구를 만나러 가는 버스안에서 나온지 30분도 되지 않아 바로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드디어 군대 걱정을 덜을 수 있었고, 지금이라면 절대 이렇게 하지 않겠지만 너무 행복한 마음에 다른 곳에 넣었던 지원을 모두 취소하였습니다.

 

그리고 믿기 어렵겠지만 연구실에 3월 1일(심지어 휴일!)까지 출근하면서 저널을 추가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인 3월 3일, 드디어 감격의 첫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까지 쓰는데 정말 너무 힘드네요. 기억을 짜내서 쓰는데 쓰다보면 중요한 내용은 다 빼먹었고..

적어도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는 내용 위주로 적고싶었는데 글에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 거 같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글을 보충하든지 해야겠네요.

 

제가 다소 극단적인 케이스를 겪었고 과장이 섞인 부분도 있으므로 너무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시면서 '역시 대학원은 가는 게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제가 처한 상황에서는 매우 힘든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배운 것들이 많이 있었고 결국 군문제도 잘 해결되었기 때문에 좋게 생각하고 있고 현재는 선배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저처럼 뺀질 거리고 시간을 잘 안 지키는 후배들을 보면서 역지사지를 제대로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그 때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하면서)

 

그래도 제가 겪었던 대학원 문화 자체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꼰대 문화, 군대 문화는 사회에서 꼭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쓸모 없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부턴 Prequel 떼고 본격적으로 본편이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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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Frankle 😂 2022.06.15 09:25 신고
  • 프로필사진 JitHub 1, 2, 3편을 쭉 봐보니 뭘 했었든 간에 자신감이 뿜뿜하셨던 것이 느껴집니다 ㅋㅋ 삽질과 우여곡절로 이어질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정민님의 강력크한 무기가 아닐까 싶네요. 저도 이런 카테고리로 포스팅 함 해봐야겠어요 2022.06.26 15:15 신고
  • 프로필사진 Jaime.Lee 자신감보단 근자감에 가까웠기 때문에 긴 시간 삽질을 했던 거 같아요. 그걸 만회하느라 이직도 열심히하고 그랬던 건데 처음부터 열심히했더라면 어땠을까 항상 후회가 되네요. 😔

    정신 차린 건 다음편이나 다다음편에 나올텐데 기억력이 문제네요. 제목과 소제목만 적어놓고 아직 내용은 한 글자도 못적었어요. 😭

    회고록 포스팅 하실 거면 몇시간에서 수십시간 걸릴 거 예상하고 하셔야 할듯! 😄
    2022.06.26 22: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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