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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퇴사 및 이직이 결정되면서, 지금까지 커리어를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와 비슷하신 분들도,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커리어 상승을 꿈꾸는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최대한 솔직하게 작성할 예정입니다.
본 편은 컴퓨터 전공자라면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질풍노도의 시기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게 되었는지를 적은 글입니다.

대학생활의 시작

힘겹게 대학에 합격했지만, 수능 100일 전부터 너무 불태운 나머지 보상심리가 발동해 대학 때는 더 공부를 안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때부터 "요즘은 1학년도 공부를 왜 이렇게 열심히 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던 시점인데 저는 그렇게 열심히 하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로, 재수를 했지만 빠른 년생이었던 저는 형 대접을 받고싶어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주지 않던 동기들과는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닌데(심지어 같이 재수했고 빠른 년생이 아닌 친구들은 재수 사실을 숨기고 친구로 지내기까지 하는데) 당시 가오가 뇌를 지배하던 2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저에겐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고, 형이라고 불러주는 친구들(또는 같은 재수생) 중 알콜 섭취를 좋아하고 수업을 제끼고 당구장에 갈 수 있는 녀석들 위주로 친분 관계를 형성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전공이 너무 맞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개발자는 영화에서 나오는 해커나 영상 편집, 게임 개발에 가까운 이미지였는데, 1학년 1학기 때 C언어를 배우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hello world를 출력하고 별을 찍을 때까진 큰 무리가 없었지만 어쨌든 제가 상상하던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고, 포인터가 들어가면서 실습시간은 지뢰찾기나 플래시게임을 하는 시간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같은 동아리에서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여학우가 있었는데 제 친구들과는 다르게 공부를 잘 했었고, 시험 기간 쯤 연락하여 도움을 청했으나 아주 매정하게 거절당한 이후로 더더욱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실습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전공 수업도 저에겐 너무 어려웠습니다. 사실 수업만 열심히 따라갔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텐데 출첵만 하고 당구치러 가거나 대출을 부탁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한 번 놓치니 다시 따라잡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1학년 2학기에는 슬슬 군대를 생각했었는데, 그 당시 4년 가까이 사귄 여자친구에게 군대 이야기를 꺼냈다가 갑자기 이별 통보를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연애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거 같지만 그 때는 군대갈 때가 돼서 차였다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났고, 첫 이별의 아픔을 격었기 때문에 정말 많이 방황했습니다. 수업시간에는 항상 잠을 잤고, 시험기간에는 술을 마셨습니다.

 

그렇게 1학년을 평점 2점대로 마치고, 친구들과 2학년 마치고 군대를 가자고 상의하여 그대로 1년을 더 놀았습니다. 1학년 때보다 상태가 더 심각했고 축제, 미팅 등 놀 수 있는 건 모두 참여하며 등록금을 날려먹었습니다. 2학년이 끝날 때 쯤은 학사 경고도 받고 평점이 1점대로 내려가있었습니다.

 

그래도 하나의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교양 수업에서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다른 과이긴 하지만 과탑을 하는 친구였고, 여러 모로 저에게 도움을 많이 주는 친구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2학년을 마치고 모두 군대에 갔는데 저는 그 친구를 믿고 한 학기를 더 다녀보기로 하였습니다.

휴학

3학년 1학기를 1, 2학년 수업을 모두 말아먹은 채 진행했더니 큰 성적 상승을 기대하긴 어려웠습니다. 친구들도 모두 군대에 가고, 다른 과에 있는 여자친구와 둘이서만 캠퍼스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수학 과목을 제외하고는 공부는 혼자 해야하는 것과 다름 없었는데, 기초가 아예 없다시피 한 저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결국 휴학을 결심하였고, 휴학 후 공부만 하기에는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알바와 국비지원 학원을 연계해주는 시스템을 활용해보기로 하였습니다.

 

LIG 손해보험(현 KB 손해보험)에서 보험 사기를 잡는 팀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엑셀 파일을 단축키 만으로도 뚝딱뚝딱 다루던 저는 실장님들의 이쁨과 관심을 독차지 하였고, 알바생이었음에도 따로 보너스를 받을 정도로 회사에는 잘 적응하였습니다. 하지만 학원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알바 끝나고 바로 가서 빵이랑 우유로 간단히 저녁을 떼워가면서 공부하러 갔는데,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가르치는 기술 자체가 너무 올드한 것(APM, JSP)이었고, 강사님은 강의를 하다가 졸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습시간 때와 마찬가지로 자바 for loop, if statement 까지는 문제 없이 잘 배울 수 있었지만 객체를 배우기 시작하자 또 멘붕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쉬운 개념인데 그 당시에는 포인터와 객체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네요.

 

결국 학원 진도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국비지원 학원이 완전 무료가 아니라 조건부 무료였는데(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출석일수를 채우고 자바 관련 자격증을 땄을 때만 전액 환불해주는 시스템), 여기서 더 시간 낭비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학원에 환불을 요구하였고, 사회 생활을 많이 못해봤던 저는 아주 일부 금액만 환불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돈과 시간만 낭비한 최악의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네이버 엑스퍼트에서 자바 벡엔드 개발자 진로 상담을 1년 정도 운영을 해보았는데, 상담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전히 국비지원 학원에서는 JSP를 가르치며 게시판 성격의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일명 풀스택 개발자를 양성해 SI 업체로 취업시켜주는 케이스가 많이 존재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문화가 개발자를 많이 양성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결국엔 개발자의 퀄러티를 떨어뜨리는 역할도 하고있다고 생각합니다. SI 업체에서 어떻게든 3년을 버티고, 보다 나은 보수를 받기 위해(따져 보면 별 차이 안 나지만) 프리랜서로 전향하여 코드 몽키로 전락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고, 실력있는 프리랜서 분들도 굉장히 많이 있지만, 실력도 책임감도 없는 분들 또한 많기에..
제가 경험했던 국비지원 학원이 유독 나쁜 곳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사님들을 깎아내리고 싶지도 않고, 특히 돈이 없는 학생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남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퀄러티가 보장된 인터넷 강의를 들어도 되고, 유튜브에서 훨씬 양질의 정보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 시간적으로 조금 더 나은 상황이라면 여러 개발 관련 캠퍼스나 개발자 코스 커리큘럼에 참여하시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혹시 국비지원 학원을 고민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그렇게 휴학을 1년 다 채워갈 때 즈음, 군대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왕 갈 거 도움이 되는 쪽으로 가자는 생각에 영어 공부와 파병(돈을 많이 벌 수 있는)이 가능했던 카투사에 지원하기 위해 남은 기간 동안 토익학원에 다녔고, 카투사에 지원할 수 있는 토익 성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뺑뺑이에서 떨어져 결국 나이는 나이대로 먹고 원하는 군대는 가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또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ICPC 학회

군대와 복학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1학년 마치고 군대간 친구들이 복학해있으니까 한 학기만 더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에 복학을 결심하였습니다. 복학 첫 날, 버스 정류장에서 1학년 때 친했던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가 자기는 프로그래밍 경진대회 학회에 가입했는데 사람들도 너무 좋고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하여 따라가서 가입하였습니다. 그 학회 이름이 ICPC(정확히는 ACM ICPC) 였고, 알고보니 3학년 1학기 때 저 혼자 공부하기 너무 힘들어서 그냥 광고보고 가입해서 하루 나갔던 그 학회였습니다.

 

친구가 이미 한 학번 위 선배들과 친구를 먹어놓아서(이 친구도 빠른 생일 재수생) 저도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고, 처음으로 공대생다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전 공부를 그 때도 못했지만 주변 친구들이 전공에 빠삭하고 코딩을 잘 해서 그런지 저도 같이 그렇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조금 안면을 익혔을 때 쯤, 무슨 수업을 누구랑 듣냐고 질문을 하더군요. 그게 뭐냐고 되물었다가 아주 당황스러워하는 눈동자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3학년 2학기부터 졸업작품을 시작해야하더군요. 심지어 그 과목이 졸업작품 설계하는 과목인지도 모르고 수강하지 않았다가 그 때 알게되어 부랴부랴 신청하였고, 완전 짜투리들만 남은 나머지 조에 속해 그 당시 졸업 못 한 30대 형, 노트북 바탕화면이 수영복 입은 2D 캐릭터인 형과 같은 조가 되었습니다. 이 때 또 군대가는 일정이 한 학기 더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졸업작품 관련된 수업은 3학년 2학기부터 4학년 1학기까지 이어서 진행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중간에 군대에 가버리면 남은 두 분이 알아서 잘 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복학해서 다시 중간부터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학회 생활은 너무 재밌었습니다. 비록 개발을 그 때까지도 하나도 못하는 저였지만, 매 주 진행하는 세미나에서 알고리즘을 풀었는데, 제가 풀이 방법을 생각해내는 데에 나름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 때 DP나 DFS, BFS 이런 알고리즘들을 외워서 한 게 아니라 거의 brute force로 시작하여 최적화시키거나 규칙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진행을 했었는데, 말 그대로 그냥 머리로 푼 것이었고, 같이 푸는 친구들도 머리도 다 너무 좋고 개발까지 잘했어서 옆에서 주워듣고 보면서 조금씩 실력이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회 친구들은 실력 뿐만 아니라 인성까지 뛰어났습니다. 과제 중 실습이 필요한 것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보여줬습니다. 제 수준이 너무 낮아 변수 이름이나 겨우 바꿀 줄 아는 상태였고 잘못되면 같이 패널티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냥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다르게 바꾸기 위해 코딩을 공부해야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자신이 없을 때는 바꾼 뒤 친구에게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럼 친구가 조금 더 다르게 바꿔주는 식이었죠.

 

그렇게 처음으로 평점 3점을 돌파하였습니다. 물론 누적이 3점이 되려면 아직 멀은 상태였고, 저는 모든 방학마다 계절학기를 수강하느라 학자금 대출을 항상 풀로 땡기고, 생활금도 땡기고, 이미 불나고 있는 집안 형편에 기름을 부어가며 대학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개발에 눈을 뜨다

보통 1, 2학년 때 실습 수업 기말 대체용 프로젝트를 하면서 개발에 눈을 뜨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는데, 저의 경우 늦어도 너무 늦게 개발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정보검색론 수업이었습니다. 검색엔진이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를 이론시간에 배우고 과제로는 검색엔진 알고리즘을 구현하고 최종적으로는 CLI (Command Line Interface) 형태의 검색엔진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인 과목이었습니다. 이론으로 배울 때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서 그랬는지 마지막 프로젝트가 나왔을 때 23시간을 꼬박 코딩하여 검색엔진을 완성하였습니다. 이론으로 동작방식을 이해하고 나니까 코딩이 걸림돌이었는데, 용케도 혼자의 힘으로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학회방에서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고있었는데 밥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망부석처럼 앉아서 코딩을 하였고, 다음날 수업 가기 전에 방문한 후배들이 맨날 학회방에서 스타와 위닝만하던 제가 코딩을 같은 위치에서 계속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면 그 때 개발했던 내용 자체는 엄청나게 허접하고, 실제로 제대로 동작하지도 않았습니다. 제대로 동작했으면 만점을 받았겠지만 B+을 받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자바로 작성했는데, 객체지향 개념을 잘 모르니 거의 main 메서드에 다 때려 박은 뒤 조금씩 다른 클래스로 옮긴 수준이었고, 패키지나 클래스에 대한 설계가 전혀 없는 정말 수준 낮은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때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구현했던 덕분에 실력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고, 객체지향 개념 이런 것은 그 당시에도 잘 몰랐지만 어느 정도는 구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두 번째는 졸업작품을 개발할 때였습니다. 4학년 1학기에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하였는데, 30대 형은 회사 다니느라 자기는 치킨으로 지원하겠다더니 담당 교수님과 싸우고 학교를 자퇴해버렸고, 2D 수영복 캐릭터를 좋아하는 형은 자기는 개발도 못하고 친구도 없다고 잡일을 다 맡겨달라고 하였습니다. 제 친구들이 그래도 개발을 다 잘 하니까 제가 친구들한테 부탁해서라도 완성하길 원하는 태도였습니다. 하지만 친구들도 다 졸작을 하고있었기에 가끔 씩 에러나는 것 정도는 물어볼 수 있지만 나머진 제가 다 해야하는 엄청난 부담을 떠안은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이전 프로젝트에서 자신감을 얻은 상태라서 어떻게든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조들은 대부분 그 때 대세였던 앱 개발을 하였는데, 저는 그 당시에도 스마트폰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었고, 학생증을 태깅하여 도서관을 예약하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개발하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당시엔 도서관에 그런 기능을 제공하는 키오스크 같은 것들이 없을 때였습니다.

 

NFC 리더기와 학생증을 대체할 카드와 같은 하드웨어 기기를 2D 수영복 형님이 결제해주셨고, 저는 그 때 처음으로 외부 라이브러리를 가져다 사용하는 연습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UI는 자바 Swing을 이용했지만 그 와중에 이쁘게 만들겠다고 포토샵을 공부하여 배경, 아이콘, 버튼 등 이미지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학교 4학년 수준의 졸작이라곤 보기 어려운 기술 스택이었죠. 라이브러리가 속을 썩이기도 했고 UI에서 삽질도 오래하기도 하였으나 어쨌든 결과물을 저 혼자 만들어냈고, 그 때 또 한 번 점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부터 "뭐든 만들 수 있겠다"라는 근자감이 마음 속에 생기기 시작하였고, 졸작을 끝내고 군대를 가기로했던 저의 계획은 대학원 진학 쪽으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개발이 재밌어지니 전공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고, 전공이 재밌어지니 개발이 쉬워졌습니다. 4학년 1학기 끝나고 군대갔다오면 모든 게 포맷될까봐 두려운 마음도 있었고, 대학원을 진학하면 전문연구요원 등으로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그 때 쯤 알게 되었습니다.

 

전공이 너무 어렵고 자신이 없으신 학생분들과 진로 상담을 하면서 항상 제가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개발을 하면서 한 번이라도 성취감을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한 번이라도 있다면 언젠간 위에 서술한 저의 경험처럼 개발 실력이 점프하는 경험을 반드시 겪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점프를 한 번만 하게 된다면,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개발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저런 경험을 꼭 경험하지 않더라도, 학부시절 성적 관리를 잘 해서 대기업에 취업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가치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 부분이지만 정말 꼭 하고싶은 다른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전공을 포기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원 진학

4학년 2학기가 되자 친구들은 취업준비하느라 바빴고, 하나 둘 씩 대기업에 취업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현실을 깨닫고 현타가 아주 씨게 왔습니다. 그래도 대학원이라는 꿈을 정했기에 세부 전공을 정해야했는데, 4학년 때 들었던 수업 중 관심을 많이 가졌었던 멀티미디어 정보 처리 분야와 '이 분은 완전 천재다' 싶었던 교수님이 계시는 고성능 컴퓨팅 및 객체 기술 분야 두 가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순서대로 1지망, 2지망을 적어서 제출하였습니다.

 

사전에 교수님과 컨택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1지망으로 적어냈던 멀티미디어 정보 처리 연구실 교수님께만 컨택을 하였고, 성적이 낮아서 안 될 수도 있다는 답을 들었으나 크게 걱정하진 않았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어느날 갑자기 고성능 컴퓨팅 및 객체 기술 연구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대학원 합격이라나 뭐라나.. 당시 학회방에 있던 저는 노란색 슬리퍼를 끌고 연구실에 갔습니다. 정말 별 생각이 없었던 게 대학원이라는 곳이 뭐하는 곳인지도 정확히 몰랐고, 학회와 비슷한 분위기(?)일 거라고 추측하고 아주 격식 없는 모습으로 찾아갔었는데요, 나중에 선배들한테 들은 이야기지만 "완전 무개념 또라이가 들어왔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대충 선배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교수님실을 찾아갔는데, 교수님께서 담배를 피우시면서 제가 어떻게 그 연구실에 가게 되었는지 설명해주셨습니다. 장학생 TO가 연구실마다 번갈아가면서 주어지는데, 이 TO를 사용할 경우 학생 수급(?)에 우선권을 가진다는 내용이었고, 제가 성적이 좋진 않았지만 따로 지원한 학생이 없었기 때문에 저를 뽑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어찌됐든 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었기에 제가 원하는 세부 전공을 공부할 수 없다고해도 많이 아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교수님과 잠깐 면담했지만 쿨내 풀풀 풍기시면서 고급스러운 어휘를 구사하시는 모습에 반했기 때문인데요, 뭔가 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연구실로 출근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다시 완전히 학부생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 주변 친구들이 S전자, H자동차에 합격이 됐을 때 쯤(지금이야 빅테크 기업, 네카라쿠배당토직두 등등 컴공 전공 졸업자들의 1지망이 많이 바뀌었지만 제가 졸업할 때만 해도 S전자가 최우선순위였습니다) 저의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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